이동휘(李東輝, 1873~1935)는 대한제국 시기의 애국계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특히 그는 연해주와 러시아에서의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이자, 한인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넘나든 복합적인 사상과 실천의 인물로 평가된다.
일제 강점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장투쟁, 임시정부 수립, 고려공산당 창당 등 다양한 방면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혁명가 이동휘를 다시 조명해 본다.
계몽운동가에서 독립혁명가로 – 연해주와 상하이의 독립운동
이동휘는 1873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였으며, 대한제국 시기에는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여 보성사 설립과 평양협성학교 운영에 힘쓰며 민중 계몽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무단통치가 강화되고,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국내에서의 운동이 탄압되자, 그는 연해주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무장 독립운동 노선으로 전환한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그는 전로한족중앙총회와 한인사회당을 조직,
한인 이주민들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민족독립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지향하는 이념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동휘는 그 이듬해인 1920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는 강경 무장노선을 바탕으로 군사력 강화를 통한 실력 독립론을 주장하며,
외교를 중시하던 안창호·이승만 등과 사상적·전략적 긴장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국무총리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으며, 임시정부 내에서의 노선 차이와 좌우 대립은 이후 계속되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임시정부를 통한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고, 러시아 적군과의 외교적 접촉, 병력 및 자금 지원 방안을 추진하며 국제주의적 독립운동을 실천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사회주의와 독립운동의 교차점 – 고려공산당 창립과 그 이념
이동휘의 정치철학은 당시 국내의 민족주의 중심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랐다.
그는 제국주의를 타파하려면 단순한 민족 독립을 넘어서야 하며, 계급 해방과 식민지 민중의 총체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이념은 그가 주도한 **고려공산당(1921)**의 창립으로 구체화되었다.
고려공산당은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의 지지를 받았고,
이동휘는 모스크바 코민테른에 한국 문제를 정식으로 상정하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조선 독립을 도모했다.
이는 ‘사회주의적 독립운동’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처음 제안한 사례였으며, 이후 박헌영·김일성 세대의 활동에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는 스탈린주의와 같은 강압적 이념통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으며, 독립운동에 있어 사회주의는 수단이자 전략이었다.
그는 철저히 반일 민족주의자였고, 동시에 전 세계 피억압 민중의 연대를 믿은 국제주의자였다.
그의 활동은 임시정부 내 보수주의자들과 갈등을 빚게 만들었고, 이후 임시정부 탈퇴와 함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되었지만,
그가 추구한 좌우 연합, 사회 정의, 독립 전쟁의 통합 전략은 오늘날에도 재평가받고 있다.
죽음과 재조명 – 망명 속에 사라진 이름, 그러나 남은 유산
이동휘는 1935년, 소련 이르쿠츠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말년은 이념 대립, 스탈린 숙청의 공포, 임시정부 내 소외 등으로 외롭게 마무리되었지만,
그가 남긴 독립운동의 복합성과 지향성은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받고 있다.
그는 단순히 한인 사회주의 운동의 창시자가 아니라,
**무장 투쟁, 국제 외교, 계급 해방, 문화 계몽까지 아우른 ‘총체적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사상과 실천은 “민족만이 아니라 인간을 해방시키는 독립”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함의를 갖는다.
2023년에는 이동휘 탄생 150주년을 맞아 관련 학술 세미나, 전시, 다큐멘터리가 열렸으며,
그의 이름은 다시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흐름 속으로 소환되고 있다.
특히 좌우 이념을 넘어선 독립운동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동휘는 가장 복합적이고 선도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론
이동휘는 단지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다.
그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함께 품은 독립운동가이자, 좌우 대립을 넘어선 통합과 실천의 사상가였다.
잊혔지만 잊혀서는 안 될 이름, 이동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천이며,
자유와 정의, 독립과 인간 해방을 함께 고민한 그의 철학을 다시 읽는 일이다.